[부자동네타임즈=이현재 기자] 코스닥이 2026년 서른 살을 맞았다. 1996년 7월1일 미국 나스닥을 모델로 출범한 코스닥은 지난 30년 동안 벤처·중소기업의 성장 무대이자 개인 투자자들의 주요 투자처로 자리 잡았다. 서른은 뜻을 세우고 스스로 선다는 의미의 '이립(而立)'으로 불린다.
그러나 서른 살 코스닥 앞에는 축배보다 과제가 놓여있다. 상장기업 수와 시가총액은 크게 늘었지만 부실기업 퇴출 지연, 테마성 매매, 불공정거래 논란, 우량기업의 코스피 이전상장 등이 반복되면서 질적성장 필요성이 커진다. 최근엔코스피 대형 반도체주 중심의 수급쏠림 속에 코스닥의 상대적 소외감도 커지는 모습이다. 정부는 승강형 세그먼트 도입과 부실기업 퇴출 강화 등을 통해 코스닥의 체질 개선을 추진하고 있지만, 한편에서는 제도 설계 방식에 따라 낙인효과와 투자자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코스닥 시장이 개장 30주년을 맞아 대대적인 체질 개선에 돌입한다. 부실기업 퇴출과 승강제 도입, 공시 신뢰 회복 등 시장 질서를 바로 세우기 위한 제도 개편이 본격화되는 가운데, 우량기업이 코스닥에 잔류하며 지속해서 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를 함께 조성해야 정책 효과가 장
기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이 7월1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열린 ‘코스닥시장 개설 30주년 기념식’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한국거래소
■상장 유지 기준 강화…동전주는 퇴출
7월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융당국과 한국거래소는 코스닥 시장의 체질 개선을 위해 상장 유지 기준을 대폭 강화했다. 경쟁력을 상실한 부실기업이 장기간 퇴출당하지 않고 남아 시장 전반의 투자 매력을 떨어뜨린다는 지적을 반영한 조치다.
이에 따라 당장 이날부터 코스닥 상장 유지를 위한 시가총액 기준이 기존 150억원에서 200억원으로 상향되며, 내년에는 300억원까지 추가 인상된다. 주가가 1000원에 못 미치는 이른바 ‘동전주’도 일정 기간 내 주가를 회복하지 못하면 상장폐지 절차를 밟게 된다.
하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현재 시총 200억원 미만 기업과 동전주가 각각 170여 곳에 달해 무더기 퇴출 사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수익성이나 자산가치가 건전한 기업마저 단순히 시총과 주가 기준에 미달해 퇴출당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정책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획일적인 기준 적용에 따른 투자자 피해를 최소화할 보완책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는 게 업계 안팎의 목소리다.
■승강제 도입…시장 재평가 이끌까
퇴출 기준 강화와 더불어 시장 신뢰를 높이기 위한 제도 개선도 속도를 내고 있다. 일례로 거래소는 업종별 주가순자산비율(PBR) 하위 20% 기업 명단을 공개해 기업들의 자발적인 기업가치 제고를 유도할 방침이다. 시장이 직접 주주환원 확대와 자본 효율성 개선을 압박하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취지다.
또다른 축은 코스닥 승강형 세그먼트(등급제) 도입이다. 기업가치와 경영성과, 지배구조 등을 종합 평가해 상장사를 등급별로 분류하고, 일정 기준에 따라 승격과 강등을 결정하는 제도다. 거래소는 이를 통해 우량기업을 쉽게 식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투자자 접근성을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이는 자연스럽게 부실·한계기업을 솎아내는 효과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경제인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상장사의 한계기업 비중은 27.6%로 주요국 중 미국(30.7%)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았다. 특히 코스닥의 한계기업 비중은 32.6%로 코스피(16.7%)의 두 배에 달했으며, 2017년 이후 증가 폭(19.5%포인트) 역시 코스피(7.1%포인트)를 크게 웃돌았다.
이러한 구조는 시장 전체의 신뢰를 갉아먹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이경태 한국은행 경제연구원 차장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한계기업 비중이 높아질수록 같은 산업 내 정상기업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며 높은 한계기업 비중이 코스닥 시장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주된 원인 중 하나라고 분석했다.
다만 시장 구분만으로는 효과가 제한적일 수 있다는 신중론도 만만치 않다. 프리미엄 등급에 편입된 기업에 대해 지수 편입, 세제 혜택 등 실질적인 인센티브를 병행해야 승강제가 실질적인 시장 재평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공시 신뢰 회복…사후 책임 강화 주문도
시장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또 다른 축은 공시 제도 개선이다. 코스닥은 성장기업 비중이 높아 투자 유치나 공급 계약, 신규 사업 등 주가 민감 공시가 잦은 편이다. 하지만 그간 공시 번복과 지연 공시가 반복되면서 투자자 신뢰를 떨어뜨렸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에 따라 거래소는 이날부터 공시 위반에 따른 상장폐지 실질심사 기준을 대폭 강화했다. 불성실 공시를 반복하는 기업을 시장에서 퇴출할 가능성을 높여 공시 책임을 무겁게 묻겠다는 취지다.
이와 함께 불공정거래에 대한 대응 수위도 높아지는 추세다. 거래소는 최근 신고 포상금을 확대하고, 최종 제재가 내려지기 전이라도 초기 제보 단계에서 신속하게 포상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편했다. 아울러 내부자 신고 대상을 넓히고 인공지능(AI) 기반의 시장감시 체계를 고도화하는 등 불법 행위 적발 시스템을 촘촘히 다듬고 있다.
반면 이같은 사전 규제 강화만으로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빈기범 명지대 인문미래교육원장은 “사전 규제를 계속 늘리는 것보다 시장을 기만한 기업과 내부자에 대한 사후 처벌을 훨씬 강하게 해야 코스닥 시장에 대한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며 “주가 조작 등에 대해서는 형사처벌까지 포함한 강력한 책임을 묻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퇴출보다 중요한 것은 ‘성장 생태계’
전문가들은 이번 정책이 코스닥 체질 개선의 출발점이 될 수는 있지만, 지속 가능한 시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부실기업 퇴출과 우량기업 육성이 균형 있게 추진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는 우량기업이 코스닥에 계속 머무를 만한 유인을 제공하는 것이다. 혁신기업이 일정 규모 이상으로 성장하면 코스피로 자리를 옮기는 ‘이전 상장’ 구조가 반복되는 한 코스닥은 유망기업이 잠시 거쳐 가는 정거장에 그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차세대 기술기업과 유망 벤처기업이 코스닥을 성장의 무대로 선택하고, 상장 이후에도 기업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는 투자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시장 경쟁력의 핵심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정환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코스닥 시장 정상화와 함께 국민성장펀드를 활용한 비상장기업 육성 방안 등을 차질 없이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거버넌스(지배구조) 개혁과 기술 개발, 전략산업 육성까지 함께 이뤄져야 건강한 코스닥 시장을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연기금 벤치마크(BM)가 대부분 코스피 중심으로 구성돼 있는 만큼 시장 육성이 목적이라면 연기금이 코스닥에도 일정 부분 투자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빈기범 원장은 코스닥 정책의 궁극적인 지향점이 명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빈 원장은 “코스닥 활성화의 목표를 단기적인 주가 상승으로 잡아서는 안 된다”며 “기술력을 가진 중소·벤처기업이 코스닥에서 자금을 조달하고, 그 가운데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성공 사례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30년이 지났지만 성장기업이 일정 규모 이상이 되면 코스피로 이전하는 구조가 반복되면서 여전히 코스닥이 ‘2부 리그’라는 인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10년, 20년 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기업이 코스닥에서 탄생할 수 있다는 장기적인 목표를 갖고 시장을 육성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서른 살 코스닥, 부실기업 솎아낼 ‘정확한 잣대’가 향후 30년 좌우
몸집은 커졌지만 신뢰도는 성장정체…주가조작·허위공시 등으로 시장 휘청…정부·거래소, 상장폐지 기준 강화 추진…부실기업 퇴출하되 투자자 보호 필수…우량기업 분류하는 승강제도 급물살…외형지표 외 혁신성 등 내실 반영해야
지난 7월1일 서울 여의도의 한 호텔에서 코스닥시장 개장 30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무대에 오른 기업인들은 저마다 혁신의 조건을 이야기했다.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회장은 “혁신이란 시장을 뒤쫓는 일이 아니라 시장이 열릴 때까지 기다리는 일”이라고 했고, 김성운 실리콘투 대표는 “좋은 제품도 소비자에게 도달하지 못하면 아무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일반 연구자에서 기업 CEO가 된 박용근 토모큐브 대표는 “기술은 목적이 아니라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세 사람의 말에는 서로 다른 업종에서 살아남은 기업의 경험이 담겨 있었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혁신기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기술뿐 아니라 시장을 만날 시간과 자본, 그리고 신뢰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코스닥은 1996년 상장기업 341개사, 시가총액 7조원 규모의 시장으로 출발해 현재 약 1800개 기업이 거래되는 성장기업 시장으로 커졌다. 출범 당시 7조원이었던 시가총액은 올해 1월 처음으로 600조원을 넘어섰다. 이후 시장 조정으로 7월 21일(종가기준)에는 약 416조로 줄었지만, 출범 당시와 비교하면 60배 안팎으로 커진 규모다.
일평균 거래대금도 개설 초기 수십억원에서 수조원 단위로 불어났다. 그럼에도 2004년 지수를 열 배 상향 조정한 점을 감안하면 코스닥지수는 30년 동안 사실상 출발선을 안정적으로 넘어서지 못했다. 몸집은 거대해졌지만 시장이 기업에 부여하는 신뢰의 가격은 그만큼 오르지 않은 셈이다.
이러한 코스닥의 역설은 혁신기업이 늘어나는 속도만큼 취약기업도 함께 늘었다는 데 있다. 매출액의 5% 이상을 연구개발에 투입하는 기업 비중은 코스닥 설립 초기 15% 수준에서 최근 29%대로 높아졌다. 바이오와 반도체, 인공지능, 로봇, 우주, 콘텐츠 기업들이 시장에 진입하면서 산업의 폭도 넓어졌다.
하지만 같은 기간 총자산순이익률이 마이너스인 기업 비중 역시 30% 안팎에서 38% 수준으로 상승했다.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한계기업이 코스닥 상장사의 3분의 1에 이른다는 분석도 나왔다. 혁신의 밀도와 부실의 밀도가 동시에 높아진 탓이다.

7월1일 한국거래소와 코스닥협회, 한국 IR협의회 주최로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기업설명회(IR) 행사 ‘코스닥 커넥트(KOSDAQ CONNECT) 2026’의 일환으로 코스닥 대표기업 CEO 대담이 진행됐다. 왼쪽 두번째부터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회장, 김성운 실리콘투 대표, 박용근 토모큐브 대표. 연합뉴스
이런 시장에서는 우량기업 한 곳의 성과보다 부실기업 한 곳의 사고가 시장 전체에 더 강하게 작용한다. 과거 닷컴버블 당시 새롬기술의 급등과 붕괴, 다단계 조직을 동원한 루보 주가조작, 오스템임플란트의 2000억원대 횡령, 신라젠의 임상 중단, 파두의 상장 직후 실적 급감과 부실상장 논란은 서로 다른 시대에 발생했지만 결과는 비슷했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투자자는 개별 기업뿐 아니라 코스닥이라는 시장 자체를 의심했다.
최근에는 공시 내용에 대한 기대와 실제 계약의 성격이 달랐다는 논란, 주주총회에서 매각설을 부인했던 최대주주의 대규모 지분 매각까지 이어졌다. 회사의 기술이나 영업실적이 아무리 우수해도 경영진의 말이 바뀌는 순간 시장은 숫자보다 먼저 신뢰를 할인한다. 코스닥의 만성적인 저평가는 이익 규모만의 문제가 아니라 약속을 믿기 어려운 시장에 부과되는 위험 프리미엄이다. 더 큰 문제는 실패의 종류가 구분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신약 임상이 실패하거나 새로운 장비의 시장 진입이 늦어지는 것은 혁신기업이 감수해야 할 사업 위험이다.
반면 실적 악화를 숨기거나 계약 내용을 과장하고, 내부정보를 이용하거나 회삿돈을 빼돌리는 행위는 시장에 대한 배신이다. 전자는 기술과 시장의 불확실성에서 비롯되지만, 후자는 지배구조와 감독 실패에서 발생한다. 정직하게 실패한 기업까지 의심받고, 불투명한 기업은 혁신이라는 간판 뒤에 숨는 구조가 반복된 것이다.
■퇴출 강화는 필요하지만…
정부와 한국거래소가 상장폐지 기준 강화에 나선 배경도 여기에 있다. 시가총액과 동전주 기준을 강화하고, 감사의견 미달이 반복되는 기업의 퇴출 절차를 단축하며, 불성실공시 누적 벌점 기준을 낮추기로 했다. 주식병합이나 감자 등을 통해 형식적으로 상장 지위를 유지하는 관행도 제한한다.
횡령·배임이나 영업정지 같은 사유가 발생하면 영업 지속성, 재무 건전성, 경영 투명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실질심사도 확대된다. 경쟁력을 잃은 기업을 시장에 오래 남겨둘수록 불공정거래와 무자본 인수합병의 도구로 악용될 가능성이 커진다는 판단이다. 투자자의 신뢰를 회복하려면 부실기업을 적시에 퇴출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과제다.
그러나 상장기업을 많이 퇴출한다고 해서 곧바로 좋은 시장이 되는 것은 아니다. 기업이 퇴출되면 최대주주나 불법행위자는 시장을 떠나지만, 아무런 책임이 없는 소액주주의 재산도 함께 묶인다. 상장폐지가 장기간 지연되면 투자금이 거래정지 상태에 갇히고, 절차가 지나치게 빨라지면 회생 가능성이 있는 기업까지 시장에서 밀려날 수 있다.
진입 심사와 상장 이후 감독에 실패한 거래소와 금융당국의 책임은 그대로 둔 채 마지막 단계에서 기업만 퇴출하는 방식도 공정하지 않다. 부실기업 퇴출은 시장 정화의 끝이 아니라 상장 심사, 공시 감독, 내부통제, 불법이익 환수, 투자자 배상 체계를 함께 고치는 출발점이어야 한다.
코스닥 개혁의 또 다른 축은 성장성과 안정성을 갖춘 기업을 별도 그룹으로 분류하는 승강형 세그먼트 제도다. 우량기업을 프리미엄 시장에 편입하고 새로운 지수와 상장지수펀드를 만들어 기관투자자의 장기 자금을 끌어들이겠다는 구상이다. 코스닥에서 성장한 기업들이 코스피로 옮겨가는 ‘탈코스닥’을 막고, 코스닥 안에서도 충분한 기업가치를 인정받게 하겠다는 취지다.

일본 도쿄증권거래소의 프라임·스탠더드·그로스 시장과 미국 나스닥의 시장구조도 참고 대상이 되고 있다. 우량기업과 부실기업이 뒤섞여 있다는 코스닥의 오랜 약점을 보완한다는 점에서 방향은 타당하다. 기관투자자가 믿고 투자할 수 있는 기업군을 만드는 것도 필요하다.
문제는 승강제가 성장의 사다리가 아니라 기업의 신분표가 될 가능성이다. 기술특례 상장기업은 상장 직후 매출과 이익, 시가총액이 크지 않은 경우가 많다. 아직 시장을 만나지 못한 기업과 이미 경쟁력을 잃은 기업을 외형지표만으로 구분하면 상당수 성장 초기 기업이 하위 세그먼트에 몰릴 수 있다.
기관 자금과 리서치, 거래 유동성이 상위 세그먼트에 집중될수록 하위 기업은 성장에 필요한 자본과 관심에서 더욱 멀어진다. 하위 세그먼트라는 꼬리표는 주가에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해외 거래처와 금융기관, 우수 인재가 기업을 평가하는 기준으로도 작용한다. 기업을 성장시키기 위한 분류가 오히려 성장을 차단하는 낙인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승강 기준은 시가총액과 매출액뿐 아니라 업종별 사업주기와 연구개발 단계, 기술의 시장성, 수주잔고, 고객 확보, 내부통제 수준을 함께 반영해야 한다. 바이오 기업의 임상 단계와 반도체 장비기업의 고객사 인증 기간, 플랫폼 기업의 이용자 확장 속도를 같은 잣대로 평가할 수는 없다.
기술성장기업이 일정 기간 하위 세그먼트에 머물더라도 공시와 연구개발 목표를 성실하게 이행하면 자금과 리서치 지원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강등 기준만 정교하게 만들 것이 아니라 승급을 돕는 컨설팅과 공동 IR, 업종 전문 리서치 체계도 함께 구축해야 한다.
■AI 시대의 낙수효과는?
코스닥의 산업 지형은 이미 새로운 단계로 이동하고 있다. 한때 시가총액 상위권을 장악했던 바이오 기업의 비중은 줄고,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기업이 빠르게 올라오고 있다. AI 데이터센터 투자가 확대되면서 고대역폭메모리와 패키징, 테스트, 전력, 냉각, 네트워크 장비가 새로운 병목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대기업 반도체 투자가 늘면 소부장 기업 전반으로 수혜가 퍼질 것이라는 기대가 형성됐다. 그러나 AI 시대의 낙수효과는 모든 기업에 고르게 흐르지 않는다. 병목을 실제로 해소하고 매출과 이익으로 연결할 수 있는 기업에만 자금이 집중되는 선별적 낙수효과가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코스닥이 단순한 자금조달 시장을 넘어 산업 인프라가 돼야 한다는 주장과 맞닿아 있다. 반도체 장비 한 대가 고객사의 생산라인에 들어가기까지는 장기간의 테스트와 인증이 필요하고, 바이오 신약은 임상 결과가 나오기까지 수년의 시간이 걸린다. 딥테크 기업은 기술을 개발한 뒤에도 생산과 유통, 규제, 해외 영업이라는 여러 장벽을 넘어야 한다.
실리콘투가 미국 창고에 제품을 먼저 쌓아놓고 고객의 주문을 기다렸던 것처럼 기술기업에도 시장과 만나는 마지막 구간을 버틸 자본이 필요하다. 기술이 제품이 되고 제품이 매출로 이어지는 전환 구간에 장기자금과 전문적인 평가가 공급돼야 한다.
성장기업의 기업가치 제고를 배당과 자사주 소각만으로 평가해서도 안 된다. 성숙한 대기업은 이익을 주주에게 돌려주는 것이 중요한 가치 제고 수단이지만, 성장 단계의 중소·벤처기업은 연구개발과 설비투자, 해외 진출에 자금을 다시 투입해야 한다. 코스닥 기업에 일률적으로 자기자본이익률과 배당성향을 요구하면 장기 투자를 줄이고 단기 실적을 부풀리는 역효과가 날 수 있다.
연구개발 일정과 신제품 출시 계획, 고객사 인증, 해외시장 진출 로드맵을 구체적으로 공개하는 것 역시 충분한 밸류업이다. 관건은 배당을 했느냐가 아니라 회사의 한정된 자금을 어디에 투입했고 그 투자가 언제 어떤 성과로 연결될지를 시장에 설명할 수 있느냐이다.
하지만 상당수 코스닥 기업에는 이를 설명할 인력과 경험이 부족하다. 대기업은 IR 전담조직과 증권사 리서치, 글로벌 투자자 네트워크를 갖추고 있지만 중소 상장사는 재무와 공시 업무를 소수 인력이 함께 담당한다.
기술은 뛰어나도 투자자의 언어로 사업을 설명하지 못해 시장에서 소외되는 기업이 적지 않다. 공시와 IR 역량의 차이가 기업가치 격차로 이어지는 구조에서 단순히 기업의 소통 노력이 부족하다고만 지적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업종별 공동 IR와 공시 컨설팅, 영문자료 작성, AI가 분석하기 쉬운 표준 데이터 제공을 공공 인프라로 구축할 필요가 있는 대목이다.
코스닥의 다음 30년을 결정할 키워드는 지수가 1500이나 3000에 도달할 수 있느냐가 아니다. 어떤 실패를 기다려주고 어떤 배신을 즉시 시장에서 몰아낼 것인지에 대한 기준을 세울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 기술개발이 늦어지는 기업에는 시간을 주되 실적을 숨긴 기업에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
임상 실패는 감수하되 내부정보를 이용한 주식 매각은 징벌해야 한다. 이 구분이 명확해질 때 투자자는 성장기업의 적자를 부실로 오해하지 않고, 기업도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불투명한 경영을 정당화하지 못한다.
30주년 기념식에서 한 기업인은 “혁신에는 인큐베이팅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 말은 코스닥이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압축해서 보여준다. 코스닥 3000은 이러한 조건이 갖춰진 뒤 따라오는 결과일 뿐이다. 서른 살 코스닥의 진짜 성장은 시장이 감당할 수 있는 신뢰의 크기로 측정돼야 한다.
수경(水鏡) 문 윤 홍 大記者/칼럼니스트
일본 도쿄증권거래소의 프라임·스탠더드·그로스 시장과 미국 나스닥의 시장구조도 참고 대상이 되고 있다. 우량기업과 부실기업이 뒤섞여 있다는 코스닥의 오랜 약점을 보완한다는 점에서 방향은 타당하다. 기관투자자가 믿고 투자할 수 있는 기업군을 만드는 것도 필요하다.
문제는 승강제가 성장의 사다리가 아니라 기업의 신분표가 될 가능성이다. 기술특례 상장기업은 상장 직후 매출과 이익, 시가총액이 크지 않은 경우가 많다. 아직 시장을 만나지 못한 기업과 이미 경쟁력을 잃은 기업을 외형지표만으로 구분하면 상당수 성장 초기 기업이 하위 세그먼트에 몰릴 수 있다.
기관 자금과 리서치, 거래 유동성이 상위 세그먼트에 집중될수록 하위 기업은 성장에 필요한 자본과 관심에서 더욱 멀어진다. 하위 세그먼트라는 꼬리표는 주가에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해외 거래처와 금융기관, 우수 인재가 기업을 평가하는 기준으로도 작용한다. 기업을 성장시키기 위한 분류가 오히려 성장을 차단하는 낙인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승강 기준은 시가총액과 매출액뿐 아니라 업종별 사업주기와 연구개발 단계, 기술의 시장성, 수주잔고, 고객 확보, 내부통제 수준을 함께 반영해야 한다. 바이오 기업의 임상 단계와 반도체 장비기업의 고객사 인증 기간, 플랫폼 기업의 이용자 확장 속도를 같은 잣대로 평가할 수는 없다.
기술성장기업이 일정 기간 하위 세그먼트에 머물더라도 공시와 연구개발 목표를 성실하게 이행하면 자금과 리서치 지원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강등 기준만 정교하게 만들 것이 아니라 승급을 돕는 컨설팅과 공동 IR, 업종 전문 리서치 체계도 함께 구축해야 한다.
■AI 시대의 낙수효과는?
코스닥의 산업 지형은 이미 새로운 단계로 이동하고 있다. 한때 시가총액 상위권을 장악했던 바이오 기업의 비중은 줄고,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기업이 빠르게 올라오고 있다. AI 데이터센터 투자가 확대되면서 고대역폭메모리와 패키징, 테스트, 전력, 냉각, 네트워크 장비가 새로운 병목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대기업 반도체 투자가 늘면 소부장 기업 전반으로 수혜가 퍼질 것이라는 기대가 형성됐다. 그러나 AI 시대의 낙수효과는 모든 기업에 고르게 흐르지 않는다. 병목을 실제로 해소하고 매출과 이익으로 연결할 수 있는 기업에만 자금이 집중되는 선별적 낙수효과가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코스닥이 단순한 자금조달 시장을 넘어 산업 인프라가 돼야 한다는 주장과 맞닿아 있다. 반도체 장비 한 대가 고객사의 생산라인에 들어가기까지는 장기간의 테스트와 인증이 필요하고, 바이오 신약은 임상 결과가 나오기까지 수년의 시간이 걸린다. 딥테크 기업은 기술을 개발한 뒤에도 생산과 유통, 규제, 해외 영업이라는 여러 장벽을 넘어야 한다.
실리콘투가 미국 창고에 제품을 먼저 쌓아놓고 고객의 주문을 기다렸던 것처럼 기술기업에도 시장과 만나는 마지막 구간을 버틸 자본이 필요하다. 기술이 제품이 되고 제품이 매출로 이어지는 전환 구간에 장기자금과 전문적인 평가가 공급돼야 한다.
성장기업의 기업가치 제고를 배당과 자사주 소각만으로 평가해서도 안 된다. 성숙한 대기업은 이익을 주주에게 돌려주는 것이 중요한 가치 제고 수단이지만, 성장 단계의 중소·벤처기업은 연구개발과 설비투자, 해외 진출에 자금을 다시 투입해야 한다. 코스닥 기업에 일률적으로 자기자본이익률과 배당성향을 요구하면 장기 투자를 줄이고 단기 실적을 부풀리는 역효과가 날 수 있다.
연구개발 일정과 신제품 출시 계획, 고객사 인증, 해외시장 진출 로드맵을 구체적으로 공개하는 것 역시 충분한 밸류업이다. 관건은 배당을 했느냐가 아니라 회사의 한정된 자금을 어디에 투입했고 그 투자가 언제 어떤 성과로 연결될지를 시장에 설명할 수 있느냐이다.
하지만 상당수 코스닥 기업에는 이를 설명할 인력과 경험이 부족하다. 대기업은 IR 전담조직과 증권사 리서치, 글로벌 투자자 네트워크를 갖추고 있지만 중소 상장사는 재무와 공시 업무를 소수 인력이 함께 담당한다.
기술은 뛰어나도 투자자의 언어로 사업을 설명하지 못해 시장에서 소외되는 기업이 적지 않다. 공시와 IR 역량의 차이가 기업가치 격차로 이어지는 구조에서 단순히 기업의 소통 노력이 부족하다고만 지적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업종별 공동 IR와 공시 컨설팅, 영문자료 작성, AI가 분석하기 쉬운 표준 데이터 제공을 공공 인프라로 구축할 필요가 있는 대목이다.
코스닥의 다음 30년을 결정할 키워드는 지수가 1500이나 3000에 도달할 수 있느냐가 아니다. 어떤 실패를 기다려주고 어떤 배신을 즉시 시장에서 몰아낼 것인지에 대한 기준을 세울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 기술개발이 늦어지는 기업에는 시간을 주되 실적을 숨긴 기업에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
임상 실패는 감수하되 내부정보를 이용한 주식 매각은 징벌해야 한다. 이 구분이 명확해질 때 투자자는 성장기업의 적자를 부실로 오해하지 않고, 기업도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불투명한 경영을 정당화하지 못한다.
30주년 기념식에서 한 기업인은 “혁신에는 인큐베이팅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 말은 코스닥이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압축해서 보여준다. 코스닥 3000은 이러한 조건이 갖춰진 뒤 따라오는 결과일 뿐이다. 서른 살 코스닥의 진짜 성장은 시장이 감당할 수 있는 신뢰의 크기로 측정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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