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동네타임즈=이현석 기자] 만 4년을 넘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2026년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러시아 후방 깊숙이 위치한 정유시설ㆍ저장시설ㆍ민군(民軍) 겸용 물류창고ㆍ무기고ㆍ보급 기지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공격이 더욱 강력해졌다는 점이다. 우크라이나의 민간 방산업체들이 자체적으로 장거리를 타격할 수 있는 드론과 미사일을 생산하는 능력을 갖췄기 때문이다.
이 중에서 가장 주목받는 기업이 파이어포인트(Fire PointㆍFP)사다. 이 회사의 CEO는 올해 35세 여성인 이리나 테레흐(Iryna Terekh). 그가 이끄는 FP는 사거리 1000~2700㎞의 FP-1·FP-2 장거리 드론과, 콘크리트 벽을 뚫는 1.15t의 폭약을 탑재하고 3000㎞ 넘게 날아가는 ‘우크라이나판(版)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인 ‘플라밍고(Flamingo)’를 생산한다.

러시아 깊숙이 타격하는 장거리 드론과 순항미사일을 제조하는 우크라이나 방산기업 파이어 포인트의 CEO 이리나 테레흐 /영국 가디언
플라밍고는 지난 6월 하르키우에서 약 965㎞ 떨어진 러시아의 한 군수품 공장을 파괴하는 데 동원됐다. 테레흐는 “실제 비행 거리는 비행 경로의 복잡성으로 인해 약 1800㎞를 날았다”고 말했다.
가격은 미국의 토마호크 순항미사일(350만 달러)보다 훨씬 저렴해, 60만 달러가 채 안 된다고 밝혔다. 또 이보다 더 가벼운 FP-1 드론은 방공망이 취약한 러시아 정유시설 공격에 주로 사용돼, 러시아 정유 생산량이 20% 감소했다.
FP는 또 아직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비해 열세인 탄도미사일 분야에서도 사거리 200㎞인 FP-7과, 850㎞급인 F-9을 개발해 실전 배치를 앞두고 있다. 요격미사일도 개발 중이다.
그러나 테레흐가 처음부터 무기를 만들었던 것은 아니다. 테레흐는 키이우 국립건축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했다. 졸업은 하지 못했고 이후 콘크리트 구조물과 도시 기반시설을 생산하는 제조업을 운영했다. 생산라인을 설계하고 공장을 운영하는 게 그의 관심사였다.
20대 시절 테레흐는 무기는 “파괴적인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러시아와의 국경에서 가까운 우크라이나 제2의 도시 하르키우에서 태어나 자란 탓에, 그가 사는 아파트 단지는 전쟁 초기 러시아의 집중 포격을 받았고 피난 과정에서도 러시아군이 민간인들에게 총격을 가하는 모습을 직접 목격했다.
애초 영화ㆍ영상 제작 지원사였던 파이어 포인트와 창립 멤버인 테레흐는 처음엔 군수물자를 조달하는 자원봉사 활동을 했지만, 기존의 낡은 방산기업 구조로는 군수 물량을 감당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또한 “자신의 안전을 다른 나라의 손에 맡기는 것에는 대가가 따를 수 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결국 파이어 포인트 창업진은 장거리 공격용 드론을 자체 개발하기로 결정했다. 첫 아이디어는 식당 냅킨 위에 그린 스케치에서 시작됐다. 초기 시제품이 주로 차고에서 제작됐던 실리콘 밸리의 컴퓨터ㆍIT 스타트업들과는 달리, FP의 시제품은 러시아 공습을 피해 지하 창고에서 제작됐다.
테레흐는 이후 언론 인터뷰에서 “건물을 짓든 무기를 만들든 핵심은 대량생산이 가능한 시스템을 설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2023년 FP의 생산 책임자가 된 테레흐의 주(主)임무는 설계된 무기를 수천 대씩 만들어낼 수 있는 생산체계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이후 최고기술책임자(CTO)를 거쳐 CEO가 됐고, 20명이 채 안 되던 FP는 이제 수천 명이 우크라이나 전역과 해외 80여 곳에서 일하는 방산기업이 됐지만, 테레흐는 여전히 “내 일은 공장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탁월한 무기 하나를 개발하는 것보다 같은 무기를 수천 개씩 생산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전쟁에서는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파이어포인트의 장거리 타격 드론인 FP-1 생산 사진 /파이어포인트
이는 파이어 포인트의 첫 공격드론인 FP-1 개발 과정에서도 그대로 반영됐다. 목표는 세계 최고 성능의 드론을 만드는 것이 아니었다. 러시아가 사용하는 이란제(製) 샤헤드 131ㆍ136과 비슷한 수준의 장거리 드론을 만들어서 우크라이나군이 보유한 구(舊)소련제 50㎏급 범용 고폭 항공폭탄(FAB-50)을 탑재하는 것이 목표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우크라이나군의 FAB-50 폭탄 보유량은 충분하지 않았다. 테레흐는 FP-1 드론 개발ㆍ생산 과정에서 확보한 수백 개의 협력업체와 생산라인은 활용해, 순항미사일 개발로 방향을 넓혀갔다.
테레흐는 “FP-1을 만들면서 거의 모든 생산 병목 현상을 경험했다”며 “그 과정에서 부품업체와 공급망이 크게 늘었고, 그 덕분에 미사일까지 개발할 수 있는 산업 기반이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FP는 2024년 여름부터 순항미사일 개발을 시작했다. 테레흐는 “우린 이걸 그냥 더 큰 드론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접근했다”고 말했다. 기획부터 실전 배치까지 9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

6월16일 프랑스 파리 외곽 빌팽트에서 열린 유로사토리(Eurosatory) 육상 및 지상·공중 방위·보안 전시회에 전시된 파이어포인트(Fire Point)의 FP-5 ‘플라밍고(Flamingo)’ 순항미사일. 탄두 부분에 플라밍고(홍학) 박제 인형이 놓였다. 그러나 실제 전장에서는 눈에 안 띄는 색으로 칠해진다. AFP 연합뉴스
이렇게 개발된 순항미사일 플라밍고(FlamingoㆍFP-5)는 사거리 3000㎞로, 러시아 본토의 전략 목표를 타격하는 대표적인 무기가 됐다. 장착되는 터보제트 엔진도 5종에 달하도록, 설계를 계속 변경했다. 특정 엔진의 공급이 끊겨도 다른 엔진으로 생산이 가능하게 한 것이다.
FP의 부품 제조ㆍ조립 공장은 우크라이나 전역과 유럽 등 80여 곳에 달한다. 어느 한 곳이 러시아 위성에 노출돼 폭격돼도, 생산의 차질을 빚지 않기 위한 것이다. FP에는 아예 ‘메인 공장’이란 개념이 없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하루 최대 7기, 연간 2500기 이상의 플라밍고 생산이 가능하다.
■방산업체 사장이 여성일 때 발생하는 최악 상황은?
‘플라밍고’라는 이름이 붙인 이유도 애초 미사일 비행테스트 후 엔진 잔해를 쉽게 찾기 위해 분홍색을 칠한 데서 비롯됐다. 원래는 빨간 색을 칠하려 했지만, 페인트가 부족했다.
이후 이 회사에선 “여성이 무기 생산 책임자가 되면 발생하는 최악이 뭐지? 무기가 핑크빛이 된다는 거지”라는 농담도 돈다. 그러나 테레흐는 실제 전장에선 미사일을 눈에 안 띄는 색으로 도색한다고 밝혔다.
미사일의 임무 계획은 군이 수립하지만, 공격이 끝난 뒤 회사는 모든 비행 데이터를 다시 분석한다. 러시아군의 전파교란 방식이 달라지면 항법 소프트웨어도 함께 수정된다. 전쟁이 계속되는 동안 무기도 계속 진화한다.
그가 지금 가장 공을 들이는 사업은 탄도미사일이다. 파이어 포인트가 개발 중인 FP-9은 사거리 약 850㎞를 목표로 하는 신형 탄도미사일이다. 러시아 후방의 군수시설과 공군기지 등을 사정권에 둘 수 있는 거리이다.
이 회사는 또 자체적인 요격미사일인 FP-7.x로 개발 중이다. 초기형은 미국의 패트리엇 PAC-2와 비슷하게 적의 미사일 가까이서 폭발하는 개념이지만, 이후엔 적 미사일과 직접 충돌하는 PAC-3 방식(hit-to-kill)으로 발전시키는 게 목표다. 그리고 이 모든 작업에서도 기본이 되는 것은 생산시설을 수십 군데로 분산시키는 것이다.
■“전쟁 끝난 우크라, 세계의 곡물 창고 역할 벗어나야”
테레흐는 전쟁이 끝난 뒤의 우크라이나는 전전(戰前)처럼 ‘농업 중심 국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전쟁 과정에서 축적한 드론과 미사일, 전자전, 소프트웨어 기술을 새로운 수출 산업으로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테레흐는 20대에 결혼해 두 아이를 뒀지만, 곧 이혼했다. 두 아이는 지난 3월14일 새벽 러시아가 대규모 공습을 한 날 이스칸데르-M 탄도미사일을 7발밖에 쏘지 못했다며, 엄마에게 “얼마 전에 보트킨스크 공장을 공격한 것은 정말 잘한 일”이라고 좋아했다고 한다. 러시아 우드무르티야 자치공화국의 보트킨스크 공장은 최종 단계에서 마하 6~7로 날며 방향을 바꾸는 기동 능력을 갖춘 이스칸데르-M을 생산하는 핵심 시설 중 한 곳이다.

7월22일 영국 잉글랜드 햄프셔주 판버러에서 열린 국제에어쇼에 참석한 테레흐가 드론 관련 패널 토론에서 "역사상 이렇게, 적은 수가 많은 적을 상대로 작은 노력으로 이렇게 큰 전략적 효과를 거둔 적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인스타그램
테레흐는 지난 3월 우크라이나 방위산업 관련 세미나에서 “군과 방위산업 분야는 적에 대한 분노를 직접 표출하는 특권을 누릴 수 있는 드문 직종”이라며 “정신 건강에 엄청난 도움이 되며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다고 느낌을 받는다”며 “적에게 비대칭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기회만큼 기분 좋게 만드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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