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동네타임즈=이현석 기자] “우리는 공격받았다. 공격받으면 전쟁 상태에 있는 것이다.”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가 8월22일(현지시간) 수도 오타와에서 “전쟁 중”이라고 선언했다. 총을 든 전쟁은 아니다. 관세를 무기로 한 무역전쟁이다. 그런데 상대는 중국이나 러시아가 아니다. 8900㎞ 가까운 국경을 맞대고 하루 20억달러어치를 사고파는, 오랫동안 캐나다의 최우방으로 통했던 미국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캐나다산 제품에 50% 관세를 예고한 가운데 양국은 막판 협상을 벌였지만 끝내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카니는 미국이 내놓은 최종 조건을 “나쁜 거래”라고 일축하며 협상장을 박차고 나왔다. 그러자 22일 0시 미국의 50% 관세가 발효됐고, 캐나다는 “달러 대 달러” 보복관세로 맞서겠다고 했다. 세계에서 가장 가까운 경제·안보 동맹으로 꼽혀온 두 나라가 정면충돌에 들어간 것이다.

8월22일(현지시각)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가 수도 오타와에서 미국과의 무역협상을 중단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미국과 캐나다, 무슨 일이 벌어졌나
불과 며칠 전까지 분위기는 정반대였다. 미국과 캐나다는 무역 합의에 근접했고 트럼프는 8월18일 관세 발효를 사흘 연기하며 양국이 합의에 도달했으며 문서 마무리만 남았다는 취지로 말했다.
하지만 21일 밤 협상은 돌연 결렬됐다. 미국은 캐나다에 상당한 관세 인하안을 제시했다고 주장한다. 캐나다산 철강 관세를 대부분 50%에서 25%로 낮추고 알루미늄도 50%에서 25%로 내리는 방안이었다. 자동차 관세 역시 미국산 부품 사용 비율에 따라 현재 25%에서 최저 7%까지 내려갈 수 있도록 하고, 목재에 최근 부과한 10% 관세도 없애겠다고 했다. 미 무역대표부(USTR)는 “주요 교역국 가운데 가장 좋은 대우”였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캐나다의 설명은 달랐다. 미국이 막판에 너무 많은 것을 새로 요구했다는 것이다. 프랑스어권인 퀘벡주의 언어·문화 보호 정책과 문화산업 지원에 손을 대고, 캐나다가 다른 나라와 맺는 무역 관계까지 미국 요구에 맞추라는 조건이 포함됐다는 것이다. 카니는 “그들은 너무 많이 요구하고 너무 적게 제시했다”고 했다.
이에 결국 캐나다가 먼저 협상장을 떠났다. 미국은 22일 0시부터 약 200억달러 규모의 캐나다산 제품에 50% 관세를 발효했다. 유제품과 주류, 하키용품, 기계·섬유·시멘트·가구 등이 대상이다. 캐나다 전체 대미 수출의 약 5%다. 캐나다는 9월8일부터 미국산 철강·낙농품·가전·농기계·펄프 등에 보복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NYT “주요 美 동맹국이 가지 않은 길”
이번 충돌이 주목받는 것은 관세 50% 자체보다 카니가 선택한 대응 방식 때문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카니가 “미국의 주요 동맹국 가운데 누구도 택하지 않았던 길을 선택했다”고 평가했다. 영국과 유럽연합(EU) 등 주요 교역 상대국들이 트럼프 행정부와 크고 작은 타협을 선택한 것과 달리, 캐나다는 자국 경제가 받을 충격을 감수하면서 협상장을 떠났다는 것이다.
다만 카니의 대미(對美) 강경론은 갑자기 나온 것은 아니다. 그는 지난 1월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 미국이 더 이상 세계 질서의 안정성을 보장하는 존재가 아니며 캐나다 같은 ‘중견국(middle powers)’들이 힘을 합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과도 무역 관계 개선에 나섰고, 아시아·유럽을 돌며 미국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새로운 경제 파트너를 찾고 있다. 카니가 즐겨 쓰는 말은 “향수는 정책이 아니다(Nostalgia is not a policy)”이다. 과거의 친밀했던 미국·캐나다 관계로 돌아갈 수 있다는 기대부터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도 물러설 기색이 없어 보인다. 제이미슨 그리어 USTR 대표는 “(캐나다와) 새로 예정된 협상은 없다”며 캐나다의 보복관세에 다시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양국이 보복에 재보복으로 맞설 가능성이 커진 셈이다.
■동맹국들도 지켜보는 ‘캐나다의 실험’
카니의 선택에는 상당한 위험이 따른다. 캐나다 경제는 미국과 촘촘하게 얽혀 있다. 철강·알루미늄·자동차·목재 등에 이미 미국 관세가 부과돼 공장 폐쇄와 일자리 감소가 나타나고 있다. 캐나다 중소 수출 기업의 40%가 이번 관세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약 3분의 1은 매출이 절반 이상 줄 것으로 예상한다는 조사도 나왔다.
그런데도 캐나다 여론은 현재 카니 쪽에 가깝다. 무역 협상 직전 조사에서 캐나다인의 절반 이상은 미국에 “아무것도 양보하지 말라”고 답했다. 보수 성향의 더그 포드 온타리오 주총리와 진보 성향의 데이비드 이비 브리티시컬럼비아 주총리도 카니를 지지했다.
이번 충돌은 캐나다만의 문제가 아닐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와 관세 협상을 벌여온 미국의 동맹국들은 대부분 미국 시장 접근을 지키기 위해 일정 부분 양보하는 길을 택했다. 캐나다는 처음으로 “나쁜 합의보다 결렬이 낫다”며 정면 대결을 택한 주요 동맹국이 됐다.
프랑스 르몽드는 이번 협상 결렬을 “오타와의 강경 전략을 시험대에 올린 사건”이라고 평가하며, 캐나다 정부가 관세 피해 산업을 지원하는 동시에 미국 의존도를 낮추는 경제 재편을 지속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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